프로야구팬에게 2021~2022 스토브리그는 가히 역대급으로 기억될 것 같다.
계약총액 100억원을 우습게 넘고, 잔류든 이적이든 다년에 큰 금액 계약이 계속해서 터지다가 양현종 선수의 복귀까지 이어진 올해 스토브리그는 그 자체만으로도 야구팬을 흥분시켰다. 당연히 늘 그랬듯 아쉬움과 기대감, 분노까지 표출하는 팬들의 의견이 쏟아져나왔고....
그 중 가장 큰 분노는 스토브리그 막판, 박병호를 잡지 않은(누가봐도 '잡지 못한' 것이 아니라 잡지 않았다) 키움 히어로즈에게 집중되었다.
'포스팅+보상금' 박병호, 히어로즈에 170억 원 안기고 떠나다 (daum.net)
이미 메이저리그 포스팅 금액으로 큰 돈을 살림살이가 어려운 히어로즈 구단에 안겼던 박병호는 10년 근속을 채운 후, 다시 22.5억원이라는 적지 않은 돈을 보상금으로 남기고 키움 히어로즈를 떠났다.
이러한 선택을 비난하는 팬은 하나도 없는 것이, 이미 언론을 통해서 알려졌듯이 키움 히어로즈는 박병호에게 이렇다할 금액 제시도 하지 않았고, 박병호가 연간 10억원, 3년 계약이라는 다소 아담한 계약으로 KT로 떠나기까지, 차분히 기다리는 듯한 모양새를 취했다.
0. 최후의 승자는 KT 위즈
대망의 우승을 달성하면서, 엄청난 예산을 투입하지 않아도, 엄청나게 쥐어짜내는 용장이 없어도 우승할 수 있다는 무난하고 산뜻한 프로야구 우승방정식을 선보였던 KT 위즈는 이번에도 긴 시간을 차분히 기다린 끝에 홈런왕 출신 박병호를 무난한 몸값에 영입했다. 물론 보상금 22.5억원이 지출되기에 저렴한 영입이라 할수는 없지만, 애초에 박병호가 흔히 말하는 손 큰 구단 소속이었다면 KT가 만나보지도 못했을 지도 모른다.
어쨌든 시장상황과 박병호와 키움의 협상과정을 꿰뚫어보고 참을성있게 기다린 덕분에 유한준이 은퇴한 공백을 충분히 메울 베테랑 거포를 영입했고, KT는 이렇다할 전력 누수 없이 디펜딩 챔피언 다운 위용을 과시하며, 내년 시즌 개막을 기다리게 되었다.
0. 터져나온 히어로즈 팬의 분노
https://www.donga.com/news/Sports/article/all/20211229/111000633/1
비극적인 일로 일사천리로 이루어진 스포츠기사 댓글 금지....그로 인해 댓글을 통한 분노 표출이 막혀버린 팬들은 요즘 심심치 않게 트럭시위를 하고 있다.
이러한 일을 주도하는 팬들의 열정에 진심으로 존경을 표한다.
무엇이든 덕질은 시간과 돈이 더해져야 존경받을 수 있다.
이미 칼둥 자매에 대한 흥국구단에 대한 이해안가는 시도가 있을 때, 트럭시위는 선수등록을 막은 일등공신 역할을 했고, 정xx 선수의 배구로서 보답하겠다는 뻔뻔한 포부에, 일부 팬들의 열정(트럭시위)으로 그나마 팬들의 불편함, 불쾌감이 표출될 수 있었다.
야구게시판을 보면 히어로즈에 대한 매각/해체를 요구하는 팬도 많은데... 오랫동안 프로스포츠를 보아왔던 팬으로서 그 심정을 공감한다. 하지만, 계속 의문이 남는다. 여기서 히어로즈 구단은 또다른 부자에게 매각되어야 하는가?.. 쉽게 결론내릴 수는 없지만, 그래도 나는 키움 히어로즈 구단이 한국에서 가장 앞서가는 프로스포츠인 야구판에서 계속 선도적인 모델로 남았으면 좋겠다.
0. 멀고도 험한 길 - 프로스포츠 구단의 자생화
모든 것이 한계에 부딪힌 한국사회에서 프로스포츠 구단이 모기업의 도움 없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여러 종목의 프로스포츠 구단이 있지만 키움 히어로즈를 제외한 어떤 구단도 모기업 지원 없이 운영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운영형태는 이른바 '펫 스포츠'라는 비판을 끊임없이 불러일으켜 왔고, 실제로 오너가 종목에 관심이 없어지면 순식간에 매각되거나, 해체되는 사례를 남겼다.
멀리 갈것도 없이 당장 2021년에도 오너의 변심에 따라 야구단의 주인이 바뀌었고..... 팬들은 새로운 팀을 반겼는지는 모르겠으나, 그 놀라운 뉴스는 언제고 또 일어날 수 있다는 느낌은 많은 야구팬들에게 확산되었다.
0. 유일하게 모기업 없는 구단 - 키움 히어로즈
하지만 히어로즈는 모기업이 없다. 그래서 스스로의 힘으로 벌어들인 네이밍 스폰서와 입장수입 등등으로 매해 살림살이를 충당하고 있다.
https://www.mk.co.kr/news/economy/view/2021/02/154942/
기사를 보면, 코로나-19 때문에 엉망진창이 되기 전인 2018~2019년 연달아 흑자를 낸 경험도 있다.
이 모델이 안정적이라고 말하기엔 이르다. 당장 기사를 봐도, 흑자달성에는 박병호 포스팅비가 큰 기여를 했고, 최근 코로나 위기에 키움 히어로즈는 아마 절망적인 타격을 입었을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 코로나가 걷힌다면, 그래서 또다른 스타를 키워 재미있는 야구를 할 수 있다면, 다시 모기업이 없어도 스포츠로 돈을 벌 수 있다는 그 꿈 같은 얘기를 한국에서 실현시켜줄 수 있지 않을까.
그렇기에 나는 여전히 히어로즈 구단이 KBO에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당장 박병호를 잃은 팬들의 분노를 자극할 마음은 없지만 말이다.
혹자가 그냥 야구팬으로서 히어로즈팬으로서 부자가 해마다 운영비를 대주는 안정적인 스폰서십이 그립다고 말한다면, 그 의견도 존중한다. 이러한 포스팅을 시간들여서 할 수 있는 이유는 내가 요즘 야구를 매경기 보지도 않고, 그나마 과거에 다른 팀의 팬이었다는게 가장 크게 작용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제 사회생활을 하면서 '돈'이라는 걸 벌어보니, 정말 큰 재정적 위기가 닥쳤을 때, 회사의 큰 자산을 매각해야하는 심정은 그 회사 사람들도 어찌보면 더 잘 알 수 밖에 없다. 다 알겠고.. 그냥 이런 저렴한 야구단 운영은 너무 싫으니, 당장 매각하고 나가라? 글쎄.... 당장 2022년도 리그에서 박병호 없이 꼴찌를 하면서 조롱을 받는다면 모르겠으나, 아직은 비난하기엔 이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박병호가 적지 않는 나이에 최근에 에이징커브에 대한 우려가 있었으니 말이다. 몇 년의 시간이 지나면 22.5억원 보상금을 받고, 1루에 신인급을 키울 기회를 택한 것이 칭찬받을지도 모른다.
0. 펫 스포츠 vs 히어로즈 모델
http://mlbpark.donga.com/mlbpark/b.php?&b=kbotown2&id=787102
2021년도는 야구팬에게 흥미로운 비교사례를 제공했다. 펫스포츠의 극을 보여준 SK와이번스-SSG랜더스 매각 사례. 그리고, 모기업 없는 자생화 운영의 험난함을 그대로 입체적으로 보여준 키움 히어로즈의 FA시장 대응사례가 그것이다.
어느 것이 옳은지는 사실 쉽게 말할 수 없다. 아마 각자 모든 야구팬의 가치관이 있을 거고, 위 엠팍 게시판에서도 댓글은 비교적 차분하게 이어졌다. 물론 이장석 구단주에 대한 비난도 있었지만...
사실 긴 시간을 야구를 보아온 나도 잘 모르겠다. 당장 응원하는 팀이 매각된다면 눈물이 날지도 모르겠지만, 오너의 의중에 따라 순식간에 매각되고,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만이 유일한 스포츠 구단 운영방식인지는 의문이 남기 떄문이다.
그래서 판단을 보류하게 되고... 키움 히어로즈가 우량 사기업으로서 계속 수익을 내면서 장기적 비전을 보여주길 빈다.
아 물론 제발....
1. 이상한 트레이드는 안 했으면 좋겠다.
2. 구단주 이하 경영진이 소송에는 그만 휘말렸으면 좋겠다.
3. FA를 못 잡으면 보상선수 좀 지명했으면 좋겠다.
이 정도 원칙만 지키면서 3~5년만 흑자를 내준다면... 난 그 때 가서 판단하고 싶다. 그 때쯤이면 지자체(세금) 지원으로 버티는 K리그 구단들이 줄줄이 벤치마킹하러 올지도 모르고.... 뭔가 남들이 모두 불가능하다 할때 자생화를 이룬 성공사례로 남을 수도 있을 거다.
물론 위 세 희망사항이 계속 요원하게 느껴지고, 코로나가 계속된다면... 어쩔수 없지만 손털고 나가는 것도 방법이겠지. (물론 이장석 전 대표는 전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이지만 말이다.)
내년에 당장 키움 히어로즈의 1루수, 4번타자가 궁금해지지만, 어쨌든 서울팜의 히어로즈는 유망주들에겐 기회의 땅이다. 2022년 제발 코로나가 좀 걷히고, 키움 히어로즈가 저력을 보이면서 또 다른 스타를 배출하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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