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VO컵이 끝나고, 이제 신인드래프트까지 조용할 줄 알았던 여자배구에 재미있는 뉴스가 나왔다.
몽골에서 온 여자배구 유망주 어르헝이 염혜선 선수 부모에게 입양되어, 귀화절차를 밟는다는 것이다.
처음 기사 타이틀을 보고 나서 든 생각은 '응? 이게 뭐지?' 라는 것이었다.
잠시 기사 내용을 읽고 생각을 정리해보니, 뭐 어르헝 선수 입장에서는 간절히 원하던 한국 국적 배구 선수의 꿈에 다가갈 수 있는 길이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겠다 싶다.
https://sports.news.naver.com/news?oid=530&aid=0000007050
특히, 도쿄올림픽에서 여자배구 대표팀이 만들어낸 드라마 덕에 최근 이런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여자배구에 대한 여론도 좋으니, 타이밍 또한 나쁘지 않다.
다만, 지금까지 다른 여러 종목에서 나왔던 귀화선수 논쟁과 어르헝 선수도 멀리 벗어나 있지는 못하니, 특히 입양이라는 다른 방식을 택했으니, 핑계 같지만 이렇게 속전속결로 입양되었다는 뉴스가 처음엔 좀 놀라웠던 건 내가 편견을 가져서는 아니다.
1. 장신 배구선수의 필요성 : 190cm 이상 전멸, 여자배구
남자축구와 남자야구 정도를 빼고 모든 구기종목이 심각한 유소년 선수 부족을 호소하고 있다. 사실 저출산에 따른 가파른 학령인구의 감소를 생각하면 지극히 당연한 것인데, 특히 키라는 신체조건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농구와 배구는 더욱 심각한 편이다.
남자배구의 경우도 노장인 신영석이 아직도 국가대표 센터를 맡고 있고... 여자배구의 경우도 이 번 김연경 센터의 국가대표 은퇴가 가시화되면서, 국가대표 라인업에서 190cm 이상이 없을 것이라는 예상이 현실화되고 있다.
물론 정호영 선수가 여전히 엄청난 기대를 받으며, 재활과 포지션 변경을 거치며 성장을 위해 애를 쓰고 있지만, 당장 국가대표에서 김수지, 김연경, 양효진 선수의 몫을 어느 정도 대체해주리라 기대하는 사람은 없다.
당장 도쿄올림픽에서 그 자리를 메꿨던 선수는 박은진, 박정아 선수 정도인데.. 당장 노장들이 은퇴한 도쿄올림픽 선수단에서 최장신은 박정아 선수로 187cm이다.
이런 현실이니 여자배구계의 앞날, 특히 지금 이 좋은 분위기에서 다음 국가대표팀의 성적을 걱정하는 전문가들은 염어르헝 선수의 귀화를 박수쳐서 환영해야될 분위기이다.
2. 귀화에 대한 반감 : 국내 선수의 좁아지는 입지, 대한민국 대표팀으로서의 정체성
한국의 스포츠 선수 귀화역사는 생각보다 매우 길다. 구기종목으로만 한정해도, 국가대표로 뛰지는 못했지만 사리체프 선수가 긴 선수생활을 한국에서 마치고, 코치로서 한국에서 생활하고 있고, 최근 사례로는 라건아 선수가 본인의 강력한 의지에 따라 한국국적을 취득하고, 한국 남자농구 국가대표팀 센터로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외에도 정말 옛날 이야기가 되어버렸지만 2002년 한일월드컵 때, 유럽팀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하던 중앙수비진을 걱정하던 협회는 당시 국내 프로축구에서 최고 수비수로 명성을 날리던 브라질 국적 마시엘 선수의 귀화를 추진한 적도 있다. 물론 다소 무리한 조건을 제시하며 망설이던 선수 태도로 인해 무산되었지만 말이다.
정말 답이 없는 국가대표팀 경쟁력을 보이는 남농 국대의 현실 상, 감히 라건아 선수가 필요없다고 말할 수 없었고, (당시 라틀리프 선수는 당연히 KBL의 대표센터였고, 지금도 국대와 프로리그에서 경쟁력을 보여주고 있다) 여러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소속 구단이 어느 정도 추가비용을 부담하고, 외국인 쿼터에서 형평성을 감안한 지명배분을 감수하는 기형적인 제도를 도입한 끝에 그는 한국인이 되었다.
당시에도 이렇게까지 해서 국대 경쟁력을 높여야 하느냐는 일부 의견은 있었다. 하지만, 처참한 국대 경쟁력이 더 심각한 문제였고, 무엇보다도 한국에서 수년간 프로선수로 뛴 외국인이 본인 의지로 귀화를 원하는 것이지, 단순히 외국인을 고용하여 국대만 뛴다는 것은 아니었기에... 지금 생각하면 협회는 절묘하게.... 여론 조성도 크게 공들이지 않고, 돈도 거의 안들이고, 귀화대상 선수를 고민하지도 않고... 라건아라는 걸출한 귀화선수를 도입하게 되었다. (*덧붙여 한 나라 당 한 명의 귀화선수만 허용되니, 추가로 알아볼 필요도 없고, 여러모로 한국농구협회는 참 운이 좋았다)
이제는 종목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귀화선수를 기용하는 국가대표팀을 축구, 야구, 농구 등에서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고, 특히 일본 같은 경우는 유소년 시기부터 외국 국적 선수들을 집중 육성한다고 하니, 한국 국가대표팀의 정체성에 혼란이 온다는 식의 주장은 너무나 올드한 것이다.
국내 선수의 입지가 좁아진다는 주장은 사실 첫 사례를 두고 이야기하기에는 시기적으로 적절하지 않다.
불과 얼마 전에 프로리그 아시안쿼터 도입에 대해 비슷한 이유로 반대하고 무산시키신 배구계 윗어른들의 고결한 뜻을 모르지는 않으나,
여자배구로 한정했을 때, 여전히 웜업존에서만 머물다 데뷔 2~3년만에 은퇴를 택하는 선수들이 있는데도 2군 운영에 대해서 아무런 청사진도 없는 연맹에서 국내 선수 입지를 걱정하는 것은 좀 어색하다....
또한, 최근에 신생구단(페퍼저축은행)이 창단하는 등 프로스포츠 중 가장 분위기가 좋은 데, 한국에서 고등학교부터 뛴 청소년 선수에게 정서적 반감을 이야기하는 것도 무리다.
3. 타 종목 벤치마킹의 필요성 : 적절한 특별귀화 및 국적회복
입양이라는 유니크한 방법을 통해, 드래프트 전에 한국 국적을 취득하게 된 염어르헝 선수는 상술한 것처럼 불거질 수 있는 여러 논란을 차단했지만, '입양'이라는 방법이 코리언 드림을 꿈꾸는 외국 국적 스포츠 선수에게 참고할만한 사례가 될지는 모르겠다.
선수풀이 넓고, 해외진출도 주기적으로 있는 남자야구, 남자축구는 논외로 하고, 나머지 종목에서도 한국 국적에 관심을 가질만한 선수들은 있는 것으로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특히 남자농구의 '아이라 리' 선수는 한국 혼혈로 이미 열혈팬 등을 통해 국내언론에 기사도 나온바 있다. (*물론 최근 기량이 하락하여, 외국인 선수 신분으로도 KBL에 못 올것 같다는 의견도 나왔지만)
또한 여자배구에 새로 등장한 외국인 선수인 '레베카 라썸' 선수도 할머니가 한국인으로 확인된 듯 한데, 여러 가지를 확인해봐야하고, 기량 자체도 아직 베일에 쌓여있지만, 이런 경우 협회에서 따로 업데이트하고 여러 가지 가능성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여자농구계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었던 '첼시 리' 사태가 결국 희대의 사기극이긴 했지만, 허위서류를 제출한 그녀가 사기꾼이었던 것이고, 허술하게 일처리한게 문제였지... 실제로 그 정도 기량을 가진 선수가 특별귀화를 희망한다면 당연히 긍정적으로 검토해야할 것이다.)
https://www.yna.co.kr/view/AKR20210706105600007
적극적으로 혼혈선수를 발굴/육성하여 올림픽에 임한 일본 남농 대표팀이 부러웠다면 종목간 특성을 무시한 무리한 비교일까..
*결론
암튼 염어르헝 선수의 등장은 너무나 반갑다! 영상을 보면, 일단 발이 느리고, 턴 동작 등도 유연하지 못한데, 아직 고등학생인 것을 감안하면 차근차근 기본기부터 가르쳐야할 소중한 재원임은 분명하다.
(*천하의 양효진 선수도 신인 시절에 비슷한 지적을 받으며 모 감독으로 부터 휴일마다 특훈을 받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아무쪼록 고등학교 졸업 전까지 남은 기간 동안, 국적문제를 해결해준 염 언니와 부모님께서 보답한다는 마음으로 기본기 훈련을 더 많이 하여.. 적어도 국대에서 양효진 선수의 공백은 느끼지 않는 그런 재목으로 커주길 기대한다.
행복한 상상이지만, 양효진 선수와 같이 블로커로 뛰게 되면, (물론 기량이 검증되어야 하겠지만) 정말 한국 여자배구에서 볼 수 없었던 통곡의 벽을 볼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부상 없이 꼭 프로배구에서 만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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