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은 누구나 '초고령화'를 우려할 것이다.
주변에 딩크족이 흔하고, 비혼족도 흔하며, 둘째를 낳을 엄두가 안 난다는 말이 전혀 놀랍지 않은 한국사회에서, 초고령화는 당연한 귀결이다.
그래서 곧, 즉 20년 안에 한국사회는 사실상 끝장난다는 주장도 꽤 설득력 있게 들린다. 이 와중에 저명한 인구학자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색다른 주장을 해서 눈길을 끌었다.
"일 잘하고 건강한 고령자 시대..정년연장보다 인력 재배치를" - https://news.v.daum.net/v/20210926180300127
이철희 교수의 주장은 새로운 듯 새롭지 않고, 낙관적인듯 낙관적이지 않았다.
일부만 옮겨보자면 다음과 같다.
- "산업별 노동력 이동이 용이하도록 노동 공급의 '탄력성'을 획기적으로 키워야 한다.
- 앞으로 20년 동안은 경제활동인구 자체가 크게 줄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 가까운 장래에 나타날 수 있는 심각한 문제는 노동인구 부족 문제가 아니고 노동 수급 불균형 문제다.
- 노동 수급 불균형 문제를 풀려면? : 부문 간 노동 이동성이 높아질 수 있도록 교육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대학이 많이 바뀌어야 한다.
- 정년 연장으로는 고령자 빈곤 문제를 해결할 수 없나? : 정책 실효성이 매우 낮다.
- 인구감소를 막기 위한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대책은? : 한 방편으로 '아이 돌봄' 시스템 자체가 강화돼야 한다.
길지 않은 인터뷰였지만, (출력해보니 A4 2장 남짓) 편하게 잘 읽혔고, 메시지도 분명했다.
20년 간 사회붕괴 정도의 위기는 없을 것이라는 다소 낙관적인 전망도 희망적이었다.
그런데 역시나, 한국 정책 입안자들이 모른 척 하는, (아니면 정말 모르는) 본질적인 문제는 여전히 다뤄지지지 않았다.
아이 돌봄 시스템 자체를 강화하면 인구감소가 해결될 것이다... 장기적으로???
글쎄...
좋은 말씀을 해주신 이철희 교수 입장에서는 돌봄 시스템이 큰 문제일 것이다.
서울대 교수 정도 위치가 되면, 누구나 인정하는 한국 상층 계급인데, 돌봄 서비스 부족 정도의 번거로움만 해결되면 된다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
20~30대 청년들이 집 가진 윗 세대를 부러워하다 못해 절규하고, 돈이 없어 연애도 결혼도 다 싫다는 현실적인 이야기가 아이돌봄으로 해결될까?
과도한 교육중시 풍토와 근로자 계층 경시현상으로 인해 누구나 상위 1%만 꿈꾸는 이 한국사회에서 사교육 문제와 서울의 잔인한 집값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상위 1%인 저명한 학자 입장에서는 돌봄 문제가 장기적 해결책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평범한 중산층에 불과한 (상위 12%에 들어간 것도 의아한) 내 입장에서는 '사교육 비용','주택비용' 그리고 이 모든 문제를 야기시키는 '상위1%만을 향한 뒤틀린 국민의식'이 문제인 것 같은데... 이 교수는 이를 모르는 걸까? 모르는 척 하는 걸까?
아. 모르는 척 한 것이라고 해도 이해는 된다. 인터뷰의 대전제가 '할 수 있는 것' 만 이야기하자는 것이었다면, '돌봄' 강화가 최선이었을지도 모르지.
20년간은 노동인구가 충분할까? 60대 이상 건강이 나날이 좋아진다고 해서 20~30대 청년의 노동력을 대체할 수 있을까.
하지만, 난 그냥 피곤하다. 왜 본질적인 문제는 외면하고, 지엽적인 이야기만 반복하는지... 사람이 암에 걸렸으면 먼저 환자와 가족에게 정확히 알리고 담배/술을 끊게 해야하는 것인데.. 요즘 풍토를 보면, 당사자에게 쉬쉬하면서... 고기위주 식단을 좀 손보고.. 걷기 운동을 조금 늘려보자.. 요런 수준의 처방을 보는 기분이다. 아직 환자가 충분히 수술로 나을 수 있는 초기 암에 불과한데도 말이다.
결국 한국이 할 수 있는 처방이 무엇인지는 여전히 다들 생각이 다른 모양이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이대로면 한국 사회는 망한다라는 공감대는 형성된 것 같다. 그나마 다행이고, 이런 다양한 시각의 분석/대안이 점점 많아지면 언젠가 무릎을 탁 치는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겠지.
마지막으로 개인적 의견이지만, 이러한 초고령화로 인한 노동력 부족 상황에 있어서 대학이 할 수 있는 건 없다. 대학에 오지 않게 해야하는 것이 사회적 해결책일텐데, 우수학생을 스카웃해서 생존해야하는 대학으로는 발언할 수 없지.
공장에서 짐 나르고, 시골에서 트랙터 끄는 청년세대 중에서도 대학졸업자가 많은 한국사회에서, 그들의 20대 2~4년이 사회적 낭비는 아닌지 먼저 묻고 싶다.
이제는 정말 필요한 사람만 대학을 가야한다는 대전제를 한국사회가 그만 인정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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