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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한국사 : '천문', 브로맨스마저 위대한 세종

대동사목 2022. 3. 7. 16:40

최근 본의 아니게 한국사에 대해서 평소보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기는 했지만, 그 이야기에서 조금은 피곤함을 느꼈기 때문인지, 한국사 관련 영화를 볼 마음은 사실 평소보다도 더 없었다.

 

하지만, 최근 가정 사정으로 아예 TV를 안 틀은지 며칠이 되자, 영상에 대한 금단 현상은 심해졌고, 실로 오랜만에 TV편성표를 찾아보게 되었다.

 

그러다 우연찮게 발견하게 된 삼일절 특선영화 천문’, 그래도 팬이라고 말 할수 있는 몇 안되는 영화감독이기에.. 시작시간을 잘 기억해두자 생각했고, 기다렸던 밤 11시 반, 야밤에 거실에 혼자 앉아서, 실로 오랜만에 조선 역사 속에 빠져들 수 있었다.

 

사실 천문은 정통 역사물이라고 말하기엔 무리다. 배경은 세종 치세 시절, 한국 역사상 최고의 공학자(또는 기술자) 장영실과 세종의 브로맨스에 가까운 이야기이고, 당연히 그렇듯이 작가적 상상력에 기댄 이야기이다.

 

딱히 브로맨스에 대한 기대는 없었고, 비교적 잘 알려진 세종 시대에 대한 이야기에 대한 기대도 없었지만, 하나 순수하게 궁금했던 부분은 최고 공학자 장영실의 노작 들이 어떻게 영화에 구현되는지였다.

 

장영실의 발명품 관련 역사적 기록은 대부분 실전되었고, 재현이 어려운 것이 많아 분명 작가적 상상력을 통해 현실과 다르게 구현된 것이겠지만, 확실히 영상으로 보는 발명품은 궁금증을 충족시켜줄 만 했다.

 

1. 자격루

가장 처음 장영실의 뛰어남을 보여주면서, 세종과의 인연을 만들었던 발명품은 물시계 자격루였다. 모든 기술은 재현에서 모방으로 이어지고, 창작으로 귀결되는 것일까. 실제로 물시계를 발명하는 과정에서 세종과 장영실은 중국에서 입수한 물시계를 그림을 바탕으로 재현하고자 한 것이 두 위인의 인연의 시작으로 그려지고 있다.

 

<출처 : 네이버 영화>

그 후 코끼리를 구하기 어렵게 되자, 현지화하여 코끼리 없는 물시계를 만들어낸 것이 모방 단계였다면, 작동 가능성을 확인한 세종의 적극적인 지원을 바탕으로 결국 공인될만한 물시계를 만들어 낸 것이 창작의 단계라 하겠다.

잘못된 역사교육이나마 열심히 받은 덕에, 객관식 시험에 장영실, 세종 이라는 키워드가 등장하면, 자격루 혹은 물시계라는 키워드를 골라내는 데 0.1초도 걸리지 않지만, 이 시계가 장영실이 10년을 걸려 만든 대작이라는 점을 몰랐다. 그리고, 시간에 맞춰 스스로 징을 올려주는 자동시계라는 점도 전혀 몰랐다.

이러한 점을 실증하여 알려준 영화 천문에 감사를 표한다.

 

 

2. 대간의

영화에서 두 주인공의 브로맨스의 절정을 보여주는 공간이자 기계가 바로 간의였다. 조선의 하늘을 보아 조선의 역법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만든 관측기기이자, 영화에서 갈등을 고조시키는 매개이기도 하다.

 

<출처 :  네이버 영화>

학창시절 판서하는 방식으로 천문학을 배운 탓에, 머리에 별자리 이름 하나 남지 않았고, (애초에 싫어하기도 했고) 아직도 천문관측의 원리를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냥 영화를 좋아하는 문과출신이 이해하기에, 농업이 산업의 전부를 이루었던 조선에서 자연현상을 관측하여 농업에 이로운 정보를 얻어내고자 최선을 다했던, 그 노력의 결과물이 측우기-자격루-혼천의-대간의-칠정산 등으로 다방면에서 나타났던 그 치세기간을 공간적으로 대표할 수 있는 발명품이 바로 대간의가 아닐까 한다.

이러한 공간을 소개해준 영화 천문에 다시 한 번 감사를 표한다.

 

여러 발명품을 본 것만으로도 영화는 시간이 아깝지 않았지만, 뭐니뭐니해도 영화의 백미는 두 주연배우의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였다.

 

1.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두 배우는 카리스마는 오글거리는 장면도 살려낸다.

 

영화의 마지막, 친우 장영실을 살리기 위해, 황희와 거래를 택한 세종은 훈민정음 창제를 접으려 한다.

이를 눈치챈 장영실은 자기가 안여가 부서지도록 조작해, 역모를 꾀했다 나서는데, 사실 정서적으로 공감되기도 어렵고, 다소 무리한 설정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포승줄에 묶인 장영실(최민식 연기)이 이 무슨 해괴한 짓거리냐며, 일갈할 때, 그런 느낌은 사라졌다. 진심을 담아 어거지를 부리는 장영실과 날 보고 똑바로 이야기해봐라, 그렇게 내 마음을 모르느냐며 간절한 눈빛을 보내는 세종(한석규 연기) 앞에서, 그러한 어색함은 눈 녹듯 사라졌다.

대화 사이 잠시 멈칫하던 장영실이 마음을 다잡고 다시 자기를 처벌해달라며, 세종이 자신을 버리고 자유로워진 상태에서 훈민정음 창제를 향해 나아가길 바라는 염원을 보이며, 영화는 끝이 난다.

이제 둘 다 적지 않은 나이, ‘쉬리에서 적으로 만났던 대배우는 절친으로 재회했고, 언제 다시 만날지는 모르겠지만, 둘의 불꽃 튀는 연기를 본 것만으로도, 그리고 다시 한 번 쉬리를 떠올릴 수 있어서 나는 감사했다.

 

2. 조연도 만만치 않다 : 능구렁이 황희 정승(배우 신구)

 

이 영화만을 보고 판단했을 때, 영의정 황희는 세종의 적인가? 동지인가? 영화가 만들어준 감정이 가신 후에도 천문에서의 황희는 참으로 헷갈리는 인물이다.

하지만, 우리 일상을 되돌아보면 사회생활이 그렇지 않을까? 때로는 적으로 때로는 동지로, 어떨때는 제3자로 그렇게 변해가며 부대끼며 긴 시간을 함께 보내는게 회사동료이자, 일로 만난 사람이라면, ‘천문에서의 황희는 참으로 느물거리는 인상으로 그런 행보를 일관되게 잘 보여줬다.

그리고 그 느물거리는 모습은 신구라는 명배우를 통해서 살아움직이듯 재현되었다.

임금이 피바람을 일으키며, 숙청의 칼을 휘두를 때, 영의정은 조용히 글자 이야기를 꺼내고, 그 말의 의미를 바로 알아차린 영민한 왕은 모두를 나가게 한 다음, 한 마디를 꺼낸다.

다 같이 죽자는 것이오?”

그 짧은 순간, 영화를 보던 영민하지 못한 나는 생각했다. ‘어 큰일났네? 이거 외통수인데? 세종 입장에서 황희랑 어떻게 협상을 하지? 카드가 없는 걸?’

이렇게 어설픈 실력으로 치열하게 머리를 굴리며, 그 다음 대사를 유추하던 내게, 창작을 하는 위대한 영화제작진은 참으로 절묘한 대사를 던지게 한다. 그것이 바로 다 같이 죽자는 것이오?’

겉치레와 짐작과 떠보는 것을 모두 생략한 왕과 영의정의 담판은 그래서 순식간에 이루어진다. 먼저 세종을 외통수에 몰아넣은 영의정은 가볍게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데, 그 모든 과정이 너무나 함축적이어서 순식간임에도, 그럴 듯하게 생동감을 불어넣은 것은 이제 구순을 바라보는 노배우 신구의 관록과 연기력이었다.

니들이 게 맛을 알아!를 외치던 유쾌한 할배는 도저히 속을 읽을 수 없는 할말만 하면서도 원하는 것을 모두 얻어내는 영의정으로 완벽하게 빙의했고, 동년배 나이에도 사직하지 못하고 죽을때까지 일했던 황희 정승을 잘 보여줬다. 역시나 하는 심정으로 연기력에 박수를 보냄과 동시에, 앞으로도 노익장을 과시하는 모습을 자주 보길 기원한다.

 

3. 공포정치의 서막 : 태종의 곤룡포

 

왕권강화와 아들의 안정적 치세를 위해 피의 학살을 저질렀던 태종. 그의 곤룡포는 세종의 심경변화와 영화 분위기의 전환점을 상징한다.

사대주의에 물든 대신들에게 답답할 정도로 당하기만 하던 왕의 반격, 말 그대로 세종의 반격인데, 그 서막을 여는 상징이었다.

 

가차없이 칼을 휘두르던 선왕의 곤룡포를 입고, 군사를 풀어 사정정국을 만든 세종. 망라할 수 있는 모든 분야에 천재였던 세종의 정치감각이라면 저렇게 사태를 풀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곤룡포를 보며, 혼잣말 하듯이, 외가 사람들의 피가 배어있다는 말을 담담하게 하는 세종의 모습. 피를 부르더라도 모든 것을 바로잡아야만 했던 아버지의 심정을 이해한 듯한 그 표정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전투 개시를 알리는 안여 사고 <출처 : 네이버 영화>

 

 

오랜만에 TV화면으로 본 영화치고는 특별히 흠잡고 싶은 면이 없었다. 애초에 허진호 감독 영화임에도 기대가 낮았던 것도 사실. 그리고, 야밤에 혼자 앉아서 집중해서 영화를 볼 수 있었다는 것 만으로도 만족도는 대폭 상승했다.

 

신기했던 한 가지, 이 영화에 여자 배역이 나왔던가? 라는 의문이 들었다. 개봉 당시에도 꽤 인기가 배우 전여빈이 조연으로 등장했는데, 기억에 남는게 하나도 없었다. 영화 소개 페이지를 보니, 장영실의 제자였다는데, 통편집당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극 전개에 아무런 역할이 없었던 것도 사실. 감독의 의도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사극인 탓도 있겠지만 남자들끼리만 이야기를 풀고 마무리한 그런 영화였다.

 

프로젝트로서 영화는 흥행에 크게 실패했다. 조선시대를 재현한 시대물이니 당연히 제작비는 많이 들었을 테고, 손익분기점에는 미치지 못한 흥행성적을 기록한 기사가 눈에 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기라성 같은 주조연을 캐스팅해도, 안정적인 연출을 해도 특출나지 않다면 망할 수 있는게 예술이자 상업으로서의 영화의 숙명이다.

 

아직 허진호 감독은 환갑 전, 요즘 나이로는 청춘이니 한 번의 실패로 무릎이 꺾이지는 않겠지. 전작 덕혜옹주도 큰 성공을 거두었으니... 다음 작품이 다시 역사물일지 모르겠지만, 어린 시절 ‘8월의 크리스마스봄날은 간다를 봤을 때의 감수성을 그리워하는 나로서는 절대절대로 허 감독이 상업영화를 그만두는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이상 고맙고, 미처 개봉관에서 관람하지 못해 미안한 영화 천문에 대하여. .